[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감산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경쟁 기업들의 숨통이 틔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 전반의 반도체 재고 수준을 낮춰 경쟁 기업들이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최근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감축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해 4분기 콘퍼런스콜에서 회사는 “올해 시설투자(캐펙스·CAPEX)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으나 7일 잠정실적 공시와 함께 공식적 감산을 선언했다.
업계에선 지속적으로 삼성전자의 감산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지난달 말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디램과 낸드플래시 재고 수준은 정상치(3.5주)를 크게 웃도는 15주 이상으로 한계 상황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실제 반도체 가격 동향지표인 DXI 지수는 전달 대비 ▷1월 -5% ▷2월 -6.9% ▷3월 -7.7% 등으로 하락폭을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메모리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가 감산을 하지 않으면 업계 전반의 침체가 훨씬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D램 시장의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곳이 과점 체제를 형성하여 서로의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강도가 높다. 또 시스템반도체와 달리 메모리 칩은 ‘대체가능한 상품’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D램은 이를 필요로 하는 고객사가 제품 특성상 3곳 업체 중 어느 한 곳에서 사지 못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구입하면 당장은 어느 정도 원하는 데이터 저장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는 점유율 45.1%를 차지하며, SK하이닉스(27.7%), 마이크론(23%)을 압도하고 있다.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기업들에 비해 칩 원가경쟁력을 확보한 삼성이 메모리 재고 물량을 늘리게 되면 경기 회복기에 삼성은 시장 점유율을 더 상승시키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업계 전반에 큰 폭으로 늘어나,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장기화될 수 있고 다른 두 기업들은 실적 악화와 더불어 경영 불확실성에 빠지게 된다.
특히 각각 2,3위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순위 뒤바뀜 우려까지 일각에선 제기되기도 했다. 두 회사 모두 실적 악화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꼬여버린 자금 사정으로 인해 SK하이닉스가 미래 투자 적기를 놓치게 되면, 미국의 지원을 받는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의 시장 점유 수준을 뺏어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삼성의 지속적 무감산 정책이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경영 불확실성을 높여 두 기업간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기도 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경영 악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날로 심화되는 추세다. SK하이닉스 역시 2분기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손실은 최소 3조2000억원에서 최대 4조2280억원이 점쳐진다. 최근 마이크론은 2023 회계연도 2분기(작년 12월∼지난 2월) 순손실 23억달러(약 3조원)를 냈다. 이는 이 회사 분기 사상 최대 손실이다. 마이크론은 3분기(3~5월)에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0% 가량 감소한 35억~39억달러(약 4조5500억원~5조600억원)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 이천 M16 전경[SK하이닉스 제공] |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 있는 반도체 생산 라인 내 클린룸 전경.[삼성전자 제공] |
마이크론은 경영 여건 개선을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조이고 있다. 회사 측은 2023년 시설투자(캐펙스)를 지난해보다 40% 이상 감소한 약 70억달러로 예상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전년보다 생산량이 줄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경영진 급여 삭감과 상여금 중단, 운영비 추가 삭감 등의 조치도 취했다. 인력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과 함께 지난해 4분기 감산을 감행했던 SK하이닉스는 감산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현금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SK하이닉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급기야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원재료와 설비투자를 위해 15억달러(약 1조9745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 발행까지 알린 상태다.
최종 시장 전체에 높아진 고객사 메모리 재고 부담이 삼성의 감산 결정으로 다소 해소되면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경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삼성의 감산이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결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전반의 쌓이는 재고에 대한 부담이 덜어진다는 측면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경기회복기가 되면 감산을 한 기업들은 감산을 안 한 기업들보다 회복이 더딜 수 있는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그런 부담도 작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삼성의 감산 소식에 따른 수혜가 기대되면서 전날 주가가 6.32%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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