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훼손 우려에 흡수합병 부담
연결편입으로 기업가치제고·실적안정화·지배력강화 ‘세마리토끼’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달 ‘2030 비전 및 슬로건’ 발표식에서 향후 매출 목표와 사업포트폴리오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롯데케미칼 제공] |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롯데그룹의 화학전문기업인 롯데케미칼이 관계사 롯데정밀화학의 지분을 빠른 속도로 매입하고 있다. 반년새 전체 주식의 6.64%에 해당하는 171만주를 취득, 지분율을 38% 가까이 끌어올린 상태다. 현재 8만원이 넘는 롯데정밀화학의 주가를 기준으로 하면 지난 6개월여간 약 14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된 것이다. 이에 롯데케미칼이 롯데정밀화학을 흡수합병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현재로서는 이보다 기업 밸류에이션 제고 및 지배력 강화 등의 효과를 염두한 연결편입 과정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롯데정밀화학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의 지분율은 37.78%(7일 기준)까지 올라왔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015년 삼성으로부터 롯데정밀화학을 인수한 이후 줄곧 31.13%의 지분율을 유지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11~12월 1.1%에 해당하는 지분을 추가 취득했으며 올 2~3월에는 3.3%를 더 사들였다. 이후 지난달부터 다시 주식 매입을 이어가더니 이달 들어 지분율이 2.3%포인트 더 올라갔다.
롯데정밀화학이 롯데그룹에 편입된 후 롯데케미칼로의 통합설이 줄곧 제기돼 왔다. 그러나 롯데정밀화학도 롯데케미칼과 같은 코스피 상장기업이고 소액주주 비중이 높기 때문에 무리한 합병 추진시 자칫 주주가치 훼손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 기업들이 물적분할 등 사업 분리·통합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고 있어 더 신중할 수 밖에 없다.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도 지난달 ‘2030 비전 발표회’ 자리에서 롯데정밀화학 주식 취득에 대해 “책임 경영 차원에서 지분을 늘린 것”이라며 “현 단계에서는 합병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롯데케미칼은 연결편입에 따른 수혜를 노리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현재 롯데정밀화학은 석유기반 화학 사업을 벌이고 있는 롯데케미칼과 달리 염소·암모니아 계열 케미칼 사업과 그린소재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질소·수소 화합물인 암모니아는 탄소 배출 없이 청정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재원이 된다. 롯데정밀화학은 국내 최대 규모 암모니아 저장 설비도 보유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이 롯데케미칼의 종속기업이 될 경우 롯데케미칼은 암모니아·그린소재도 신규 사업으로 인식, 고부가·친환경 부문 강화로 국내외 투자자·평가사들로부터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제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롯데케미칼은 오는 2030년까지 매출 50조원을 달성하고 이 중 60%를 고부가 스페셜티 및 그린 사업으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와 궤를 같이 한다는 분석이다.
사업 뿐 아니라 재무도 연결로 잡히기 때문에 국제 유가에 크게 연동될 수 밖에 없는 실적에도 다소 안정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롯데정밀화학의 연결편입을 위해서는 50%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에 롯데케미칼이 남은 12.23%포인트의 추가 지분 취득(약 2500억원)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동욱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롯데케미칼이 롯데정밀화학의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지분율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며 “올레핀·방향족·고부가합성수지의 부정적 실적이 전망되는 가운데 롯데정밀화학 연결 편입시 유가와 비교적 상관관계가 적은 정밀화학·무기화학사업이 실적이 추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롯데정밀화학의 암모니아 사업은 중장기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며, 상대적으로 매출 규모가 작던 그린소재부문도 의약용·대체육용 수요 증가 및 증설 효과로 높은 수익성을 지속할 것”이라며 “투자 가성비 고려시 롯데케미칼의 지분 매입은 흡수합병보다는 연결 편입이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