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포스코 제공] |
[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3년 전,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공장을 짓고 중소 협력업체 50여 곳과 동반 입주하는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유치전이 벌어졌다. 3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와 120조원 규모의 민간투자가 걸린 이른바 ‘황금알’ 프로젝트였다.
경기 용인·이천을 비롯해 충북 청주, 경북 구미, 충남 천안 등 5개 지자체가 출사표를 던졌다. 경쟁이 과열되자 일부 지역 국회의원은 기업을 압박하며 이전투구 양상을 보였다. 반도체 초격차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한 프로젝트가 정치 논리로 변질될 것이란 우려가 잇따랐다.
용인시로 대상지가 결정된 이후 SK하이닉스 사업장의 본토였던 이천시가 ‘패자’로 비쳤지만, 성토나 원망은 없었다. 되레 엄태준 이천시장은 소모적 논쟁과 희망고문을 시민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며 상생발전을 응원했다.
지역에서 정치권 이슈로 비화한 포스코 지주사 서울 설립 갈등과 대비된다. 포스코 본사는 포항으로 유지되지만, 지주사 포스코홀딩스의 주소지를 서울로 정한 것을 두고 포항시에 이어 대선후보들이 반대하면서다.
앞서 포스코는 지주회사를 서울에 설립하더라도 인력 유출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룹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철강 사업의 경쟁력 강화 차원의 투자도 약속했다.
업계는 포항시가 우려하는 세수 감소도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세 세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법인세분 지방소득세는 법인세 산출세액의 10%를 사업장별로 종업원 수와 건축물 연면적으로 안분해 납부한다. 지주사로 전환하더라도 포항제철소 연면적과 종업원이 그대로 유지되므로 법인세분 지방소득세는 현재와 거의 같다는 의미다.
15일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앞에서 포항 오천읍개발자문위원회를 비롯한 오천읍 주민 150여명이 포스코지주사 포항 유치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 |
이 때문에 포항시와 정치권의 반발이 지역균형발전으로 포장된 표퓰리즘, 지역이기주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업이 특정 지역에 묶여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지역 발전 불균형을 야기하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생산시설 외 전략·연구 업무를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는 논리도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대목이다. 이번에 새롭게 만들기로 한 미래기술연구원에 필요한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선 서울에 위치해야 하는 현실적 이유도 무시 못한다. 포스코의 미래를 담보할 신사업을 발굴하고 이를 포항에 투자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이어 가는 게 더 합리적 결정이다. 정치권에 기대 풀어갈 문제가 아니다.
포스코 주주(출석 기준) 89%의 찬성으로 결의된 사안을 지역과 정치권의 압력으로 바꾸겠다는 의도 역시 과도한 경영 개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분별한 ‘포스코 흔들기’의 폐해가 주주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사실상 포스코는 포항시를 발전시킨 일등공신이다. 포항이 포스코의 기업도시로 불리는 이유다. 포스코는 지난 50여 년을 성장하면서 ‘포스텍’을 설립해 포항을 교육 도시로, ‘파크1538’과 ‘스페이스워크’, ‘체인지업 그라운드’를 조성해 관광·벤처창업의 도시로 만들었다. 유망 벤처기업을 유치하는 ‘벤처 밸리’와 ‘그래핀 스퀘어’ 공장 건립도 진행 중이다.
포항시는 상생을 우선하는 ‘품격’을 보여야 한다. 포스코가 강조한 ‘공동운명체’라는 지점이 출발선이다. 포스코가 지주사 전환을 통해 목표로 삼은 신사업 성장의 과실은 포항시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와 달리 지자체 간 경쟁이 없다는 점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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