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주 유럽연합(EU)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불허 결정에 대해 법원 제소 등의 대응에 나설 계획이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기업 결합 신고는 철회했다. 이로써 사실상 대우조선해양을 산업은행의 품에 돌려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지난 1978년부터 시작된 대우조선과 산은의 인연은 또 한번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험난한 새 인수자 찾기에 나서야 하는 산은의 심정은 답답할 수 밖에 없다.
대우조선과 산은의 인연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따라 국영기업 대한조선공사(현 HJ중공업)가 짓던 거제 옥포조선소는 1차 석유파동으로 공사가 진척되지 못했는데, 1978년 대우그룹이 이를 인수해 대우조선을 설립하게 된다. 이 때 산은이 40% 넘는 지분 출자에 참여한 것이 시작이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대우조선은 노사분규와 조선 경기 악화 등으로 만성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고, 1989년 국가의 산업합리화(구조조정대상) 업체로까지 지정됐다. 이 때 산은은 대우조선의 대출 상환을 유예시키고, 신규 자금을 투입하면서 2차 지원에 나섰다. 이를 기반으로 대우조선은 조선업 경기개선과 사업 다각화 등에 힘입어 1991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산업합리화 후속 조치에 따라 1994년 대우중공업에 합병된다.
또 한번의 위기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전후로 찾아온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외형을 확장해왔던 대우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맞은 것이다. 대우그룹 채권단은 그룹의 자체 구조조정 방안이 신뢰를 잃자 1999년 대우중공업을 포함한 계열사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2000년 대우중공업은 대우조선공업과 대우종합기계로 분리된 후 출자전환되는 데 이 작업도 산은 주도로 이뤄졌다. 이로써 산은의 대우조선공업의 지분 41%를 지분을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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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대우조선공업의 경영을 정상화시킨 후 지분 매각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산은의 과업이 본격화됐다. 대우조선공업은 2001년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고, 같은해 액화천연가스(LNG)선 수주 세계 1위를 달성하고 잠수함 건조 등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이에 탄력을 받은 산은은 이듬해인 2002년 상호를 대우조선해양으로 변경하고 새주인 찾기에 나섰지만 마땅한 후보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산은은 2008년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공식 추진했으며 포스코, GS, 현대중공업, 한화 등이 이에 참여한 가운데 한화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 하지만 산은과 한화 간 매각대금 결제방식에 대한 이견차가 좁혀지지 못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불어닥치면서 2009년 계약이 최종 파기됐다.
금융위기 여파로 2010년 들어 조선업의 불황은 깊어진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은 매해 조 단위 적자를 냈으며 산은은 2015년(약 4조원)과 2017년(약 3조원) 두 차례 총 7조원 넘는 국고를 또 한번 대출과 출자전환 등의 방법으로 쏟아 붓는다.
이 효과로 2018년 대우조선해양은 8년 만에 연간이익(영업이익 기준)이 1조원을 넘어섰고, 산은은 다시 대우조선해양 민영화에 나섰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한 조선업 빅3 중 나머지 두 곳이었던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인수 후보로 올랐고 삼성의 미참여 결정 후 현대가 최종 인수자로 낙점됐다.
현대중공업은 수주 경쟁에 따른 출혈 방지 및 시장 지배력 강화 등을 목적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결정했고 2019년 산은과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후 3년 만에 해외 경쟁당국의 반대로 산은이 기대했던 대우조선해양과의 ‘이별’은 또 다시 기약없이 늦춰지게 됐다. 독과점 가능성으로 삼성중공업 등 다른 조선사로의 매각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고 10여년 전 인수를 검토했던 곳들 역시 달라진 산업 생태계 등으로 손사래를 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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