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여성이 운전을 하다가 적발돼 태형이 선고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운동가 세이마 자스타니아는 지난 7월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이후 지난달 27일 제다시 법원에서 태형 10대를 선고받았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우디에서 지난 5월부터 ‘여성운전운동’이 벌어지면서 여성 운전자들이 체포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법적 처벌이 선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를 두고 국제인권단체 등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다음 날 직권으로 태형 선고를 철회했다.
#지난 8일 이란의 한 여배우가 예술 규제를 다룬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태형을 선고받았다. 이란의 여배우 마르지 바파메르가 영화 ‘테헤란을 팝니다(My Teheran For Sale)’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이란 법원은 태형 90대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테헤란을 팝니다’는 테헤란의 한 여배우가 이란 정부에 의해 공연이 금지되자, 예술적 표현을 위해 비밀 활동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란 보수층은 이 영화에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바파메르는 지난 7월 당국에 체포됐다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과거에는 이슬람이란 종교가 여성 억압을 의미하지 않았다.
신은 정의롭다. 다만 왜곡되었을 뿐이다. 남성의 강압에 의해…
- 제럴딘 브룩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中
올해 초부터 중동 및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으로 중동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란 여성이 태형을 선고받은 사례처럼 중동 여성이 겪는 인권유린 실태는 심각하다.
▶참혹한 중동 여성의 삶=지난해 12월 유엔(UN) 관계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선 소녀들을 강제로 결혼시키고 가문의 명예 실추를 이유로 여성을 살해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밝혔다. 그는 아프간 여성 30% 이상이 신체적, 심리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든 아프간 여성은 머리부터 온몸을 감싸는 부르카를 입어야 하고 글을 아는 여성의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이는 남성(40%) 보다 현격히 낮은 수치다.
아프간 여성운동단체의 아피파 아짐은 “관련법 제정에도 가정폭력은 아프간 여성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성폭행범과 여성인권 침해자를 너무 쉽게 용서한다”며 아프간 정부를 비판했다.
아프간 외 다른 중동 국가 여성 역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사우디는 보수적인 율법인 샤리아법을 적용해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리비아 여성은 남편 등 남성 가족의 허락 없이 외출이나 여행을 할 수 없다.
지난달 3월 구성된 이집트 새 내각에는 여성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이집트 여성들은 행진을 하며 시위를 벌였다. 국제인권기구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중동연구원 나디아 칼리프는 “이집트 과도정부를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다”며 “여성인권이 과거로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칼리프는 “여성 단체들이 (정부구성에) 여성의 전면적인 참여를 요구했다”며 “하지만 군 최고위원회가 새 정부 수립 과정에서 여성들을 배제했다”고 말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양성평등지수는 평균 56%이지만 중동국가 대부분은 15~30%에 불과했다.
▶여성인권 향상 열망은 옷차림에서 드러나=‘아랍의 봄’ 이후, 중동 여성들의 권리향상 열망도 높아지고 있다. 중동 여성들은 인권개선을 위해 옷차림부터 변화시키고 있다. 요즘 중동 여성들 사이에서 얼굴과 머리카락을 드러내거나 화려한 색감의 베일 착용이 늘어나고 있다. 이란에선 ‘룻싸리’라는 머리만 살짝 가리는 스카프가 유행이다.
중동국가 일부 여성들은 베일 착용을 거부하고 이슬람에서 금지하는 몸의 체형이 드러나는 옷을 입기도 한다. 외신은 이런 현상이 여성들의 권리 상승 욕구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아랍의 봄’ 시위에 참여했다. 리비아 민주화 시위 당시 여학생, 가정주부 등 다양한 여성들이 시위에 동참해 ‘카다피 타도’와 ‘자유’를 외쳤다. 이를 두고 외신기자들은 그간 이슬람 율법에 순응하던 중동지역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권리보장 요구에 나서고 있다고 평했다.
기존 정권을 축출해 ‘재스민 혁명’을 맞이한 이집트와 튀니지에선 여성들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 튀니지 여성 수백명은 여권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며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외신은 중동 독재가 끝나자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향상시키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각구성에 여성 반드시 참여해야=중동여성 권리 신장을 위해 힘써온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설리프 대통령과 평화운동가 리머 보위, 예멘의 여성운동가 타우왁쿨 카르만에게 올해 노벨 평화상이 돌아갔다.
노벨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노벨 평화상 수여로 중동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기를 바란다”며 “하지만 여성이 ‘아랍의 봄’ 후 정부구성에 참여하지 못하면 여성인권은 향상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엔 역시 중동국가들이 여성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헌법에 여성의 정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칼리프 연구원은 “여성에게 차별적인 법조항을 없애고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면서 “아랍의 봄 이후 (내각 구성에) 여성의 동등한 참여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민상식 인턴기자/ms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