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유학 중에 집단 섹스를 거부한 룸메이트를 살해한 혐의로 4년간 복역중이던 미국 여대생 아만다 녹스(24)가 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 평결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됐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페루자 항소법원은 3일 밤 녹스와 녹스의 애인이었던 이탈리아 남학생 라파엘 솔레시토(당시 23세)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즉각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이번 사건은 미녀 대학생과 살인, 집단섹스, 미스터리, 마약, 국경을 넘나든 법정 싸움 등 온갖 극적 요소가 결합해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서방 언론 취재진은 페루자 법원 앞에 수백명이 운집해 헤드라인 뉴스로 앞다퉈 보도했다. 또 이번 사건은 ‘섹스 스릴러’의 결정체로 TV시리즈와 영화, 책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집단성교 거부해 살해?=사건은 2007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시애틀 워싱턴 대학에서 유학온 녹스와 컴퓨터를 전공한 애인 솔레시토는 같은 집에서 살던 영국인 여대생 메러디스 커처(당시 21세)를 살해한 혐의로 사건 발생 5일 만에 체포됐다.
검찰은 녹스가 커처에게 자신의 애인 솔레시토와 마약거래상 루디 구데(당시 20세)와 함께 집단 섹스를 할 것을 요구했다 거부당하자 격렬한 싸움 끝에 커처를 칼로 40차례 찔러 살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솔레시토와 구데는 녹스가 잔인하게 칼을 휘두르는 동안 커처가 반항하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고 숨져가는 와중에 성폭행까지 한 혐의를 받았다. 커처의 시신은 녹스와 함께 쓰던 방의 침대 아래서 반나체 상태로 발견됐다.
하지만 녹스와 솔레시토는 줄곧 범행 사실을 부인해왔다. 녹스는 이날 공판에서도 “나는 살해 현장에 없었고 최악의, 가장 잔인한 상황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친구를 잃었다”며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솔레시토 역시 “살아오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DNA증거 부실로 무죄=녹스는 이날 무죄 평결을 받자 오열하며 쓰러졌다. 지난 2009년 1심에서 녹스는 징역 26년형, 솔레시토는 25년형, 구데는 30년형을 각각 선고 받았다. 하지만 이후 구데는 단독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녹스와 솔레시토가 가담한 성폭행 시도 과정에서 커처가 살해됐다고 주장해 16년형으로 감형됐다.
이번 무죄 평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DNA 증거 불충분이었다. 외부 전문가들은 올해 7월 DNA 증거가 경찰의 수집 과정에서 실수로 오염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날 8명의 배심원들은 DNA 증거의 진실성을 놓고 11시간 동안 숙의한 끝에 2009년 유죄 평결을 뒤집었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 녹스의 명예훼손 혐의는 1심의 유죄 평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녹스는 사건 당시 술집 주인 페트릭 루뭄바를 살해범이라고 주장해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3년을 구형 받았다. 하지만 녹스는 이미 4년을 복역해 3년 형기를 모두 채운 상태다. AP통신은 이르면 4일(현지시간) 녹스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천사vs악마 두얼굴의 녹스=이날 판결이 나오자 녹스의 가족은 전세계 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미국 TV토크쇼에 출연해 녹스의 결백을 주장해온 그녀의 언니는 이날 회견에서 변호사와 지지자들, 그리고 법정에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시애틀에서 재판 결과를 지켜보던 녹스의 지지자들은 살인 혐의에 무죄가 선고되자 “우리가 해냈다”, “그녀는 자유다”라며 환호했다. 그동안 이탈리아 사법체계와 경찰 수사에 불신을 보였던 일부 미국인들은 녹스를 이국땅에서 누명을 쓴 ‘청순가련형 여대생’으로 여기며 적극적인 구명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이탈리아 검찰은 녹스가 항상 술을 마셨고 마리화나를 피웠으며 낯선 남자와 성관계를 즐기는 ‘방탕하고 냉혹한 악녀’였다고 강조했다. 또 녹스가 살인자로 지목한 루뭄바의 변호인은 “녹스가 언론을 이용할 줄 아는 천사와 악마의 두얼굴을 가진 영혼”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