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열린 IMF(국제통화기금)ㆍ세계은행 연차 총회가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나면서 유로존 위기에 대한 공포가 증폭되고 있다.
총회에 참석한 G20(주요 20개국) 소속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다음달까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한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지만, 유럽 재정위기 국가를 지원하기 위한 EFSF의 증액이 유로존의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금융시장은 또 한번 패닉에 빠졌다.
이에 따라 “유로존 위기가 더는 관망할 수 없는 ‘제로아워(zero hourㆍ결정의 순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FSF확대, 유로존에 부정적=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EFSF 확대 시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비어스 S&P 국가 신용등급 담당 글로벌 헤드는 25일(미국 시간) 한 주요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로존 정책 입안자들이 EFSF를 확대하면 유럽 주요 국가인 프랑스나 독일의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EFSF를 확대하면 현재 ‘AAA’ 등급인 이 기금의 신용등급도 하향조정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어스는 그러나 EFSF의 여러 가지 확대 방안이 유로존 국가 신용등급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거부했다.
다만, ECB의 도움을 받아 EFSF의 규모를 확대한다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유로존 국가들이 시장에 자금을 주입할 필요가 없어져 반발이 덜할 뿐 아니라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줄일 수 있지만, ECB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로존 이번주 또 중대고비=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유로존은 이번주 또 한 번의 중대고비를 맞는다. 그리스의 ‘질서있는 디폴트’를 허용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IMF, EU(유럽연합), ECB(유럽중앙은행) 이른바 트로이카는 그동안 중단해온 그리스 실사를 이번주 전면 재개한다.
이번에 예정된 지원규모는 구제금융 6차분인 80억유로로, 이번 실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리스는 사실상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그리스 정부는 최근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퇴직연금 삭감, 공무원 임금 삭감 등 강도 높은 추가 긴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아울러 그리스 구제금융에 반대해온 핀란드와 독일은 오는 28일과 29일 EFSF 기능 확대와 관련한 의회 표결에 들어간다. 이들 두 나라의 EFSF의 증액안 통과 여부는 그리스 디폴트와 향후 유로존 위기의 향방을 가늠케 해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핀란드는 그동안 지원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그리스로부터 담보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이 ‘동등 대우’ 원칙에 어긋난다는 회원국들의 반발에 직면하자 “모든 회원국이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는 애매한 태도를 보여 의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한 독일 연방 하원은 29일 유로존이 지난 6월 합의한 EFSF 4400억유로 증액안 찬반 표결을 실시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EFSF 증액안이 통과되도록 의회 지도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지만 독일인의 75%가 이를 반대해 통과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치가 발목…과감한 결단 필요=한편, 유로존 위기가 악화일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정치’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인 볼프강 뮌차우는 26일자 기고문에서 “유로존이 불타고 있는데도 정책 결정자들은 주저하고만 있다”며 “유로존을 위한 결정의 시기(zero hour)가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IMFㆍ세계은행 연차 총회가 성과없이 끝난 점과 관련해 “논의의 초점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노(No) 유로채권, 노(NO) 재정감축’ 등 온통 할 수 없는 것들에 집중돼 있다”면서 “유로존 위기는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끝에 도달했으며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