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산된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재정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면서 모처럼 청신호가 들어왔다.
이탈리아 상원이 재정긴축안을 통과시켰고, 독일 헌법재판소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구제금융안에 손을 들어주면서 외견상 고비를 넘어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유로존 재정위기의 진앙지인 그리스가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인 긴축재정안 목표를 지키지 못해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이탈리아 경제가 여전히 위태로운 등 유로존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요소는 여전한 상황이다.
▶‘제2의 그리스’ 이탈리아 재정긴축안 통과=이탈리아 상원은 7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정부가 제출한 542억7000만유로의 재정감축안을 승인했다. 재정감축안은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당초 455억유로(69조원)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12일 채권시장의 동요를 막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455억유로 규모의 재정감축안을 마련했다가 시장이 안정되자 고소득층에 대한 ‘연대세’를 철회하는 등 후퇴하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채권 이자율이 다시 급등하기 시작하자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6일 저녁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해 재정감축 규모를 542억유로로 늘렸다.
독일 헌법재판소도 이날 그리스 등 유로존 구제금융에 독일이 참여하는 것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판결은 유로권 지원에 반대하는 독일 의원과 경제학자가 제기한 위헌 소송에 대해 내려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헌재 판결 후 “유로존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유로화는 통합 유럽을 보증하는 것으로, 유로화가 망하면 유럽이 망한다”고 말했다. 또 유로존 회원국의 유로본드 공동 발행에 대해 “모든 부채를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유로 재정위기국들이 계속 지원받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은 독일 헌재 판결로 메르켈 총리의 유로 지원에 의회 입김이 더욱 강해지게 된 점을 주목했다. 또 8일 소집되는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회의에서 유로 경제를 촉진하기 위한 수용적 기조가 마련될지를 지켜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ECB가 11월 회동에서는 금리를 인하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급선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 추가지원 차질 우려=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는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이달 말 예정된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차기분을 지원받는 전제조건인 긴축안 목표를 그리스 정부가 지키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베타 라디코바 슬로바키아 총리는 7일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제시한 조건들을 충족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 겸 룩셈부르크 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모든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차기분 집행이 보장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는 지난 6월 중기재정계획을 통해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난해 10.5%에서 7.5%로 낮춘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8%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로 예정돼 있던 구제금융 6차분 80억유로의 집행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이 경우 4/4분기에 그리스가 디폴트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탈리아도 의회가 재정감축안은 승인했지만 여전히 악재는 도처에 있다. 이탈리아 경제가 악화된 것은 1조9000억유로(2870조원)에 달하는 국가채무 때문. 이탈리아의 국가채무 비율은 GDP 대비 120%로 유로존 역내에서 두 번째로 높다.
이달 중순 만기가 집중돼 있는 국채도 큰 부담이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만기 국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이탈리아 경제가 ‘제2의 그리스’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로존 3위 경제권인 이탈리아가 휘청일 경우, 유로존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단 시장은 재정감축안이 확정되는 20일의 하원 표결을 주시하고 있어 불안한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