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미국의 외교정책과 국제안보 전문가인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국제관계학 교수ㆍCIA블랙박스 저자)은 9ㆍ11 테러가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은 초기 6년까지였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외교정책 변화는?
▶진주만 공습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본토가 공격받으면서 미국의 외교정책도 강경노선을 걷게 됐다. 특히 냉전 이후 힘을 잃었던 미 정보기관 CIA가 재부상하면서 정보 관련 예산도 배로 늘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사정책에도 힘이 실렸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힘의 외교’는 곧 비난에 직면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것이 결국 군사적인 수단뿐만 아니라 외교, 문화, 공공정책과 같은 방법이 동원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반미감정이 더 악화됐다. 부시 행정부의 하드 파워의 폐단을 절감한 오바마 대통령은 소프트 파워를 강조하면서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적절히 혼용한 스마트 파워 외교정책을 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해 말 “21세기 외교관은 시골 부족 원로도 만나고 줄무늬 정장 외에 멜빵바지도 입어야 한다”며 감성 외교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국제관계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부시 대통령의 집권 기간 6년 정도는 전 세계가 테러 대 반테러 세력이라는 양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한 시기였다. 하지만 50년간 이어져온 냉전과 달리 테러와의 전쟁은 6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이념 대 이념,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9ㆍ11 테러가 국제정치의 판을 뒤흔드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지만 1, 2차 세계대전이나 냉전과 같이 국제사회에서 ‘편을 가를 수 있는’ 엄청난 변수는 아니었다. 이제 국제관계는 테러와의 전쟁보다 글로벌 경제공조, G2, 핵확산 방지 등 더 중요한 이슈가 부상했다.
-미국의 패권에 변화를 줬나.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을 감행한 2003년은 미국의 패권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다. 하지만 이후 부시 행정부가 군사력의 전횡을 보임으로써 미국의 가치와 제도의 매력은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됐다. 반면 중국은 급부상했다. 매년 군사력도 두 자릿수로 증강하면서 국제 질서가 G2 혹은 1극-다강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지난 5월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일단락 짓는 사건이었다. 이후 2인자도 사살됐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알카에다 세력도 급격히 약화됐다. 빈라덴이 사살되면서 군사적인 측면에서 테러조직을 약화시키려는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테러와의 전쟁 방향은?
▶미국 경제에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파병으로 대테러 전쟁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테러분자의 소탕이나 점조직을 와해시키려는 군사작전은 CIA나 네이빌실 등의 특수작전을 통해 계속될 것이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