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교정책과 국제안보 전문가인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국제관계학 교수ㆍCIA블랙박스 저자)은 9.11 테러가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은 초기 6년까지였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있어서도 “조지 W 부시 행정부 2기 중반이 넘어서면서 군사력을 위시한 강경노선은 힘을 잃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면서는 연성 권력을 강조한 스마트 외교로의 전환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 9.11 테러가 ‘문명의 충돌’이라는 의견이 있다.
-9.11 테러 당시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한 ‘문명의 충돌’이 현실화됐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갈등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문명의 충돌이라기 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일으킨 테러 행위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과잉 대응한 양상이 6년간 지속된 것이다.
▷미국 외교정책 변화는?
- 진주만 공습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본토가 공격 받으면서 미국의 외교정책도 강경노선을 걷게 됐다. 특히 냉전 이후 힘을 잃었던 미 정보국 CIA가 재부상하면서 정보관련 예산도 배로 늘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사 정책에도 힘이 실렸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힘의 외교’는 곧 비난에 직면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것이 결국 군사적인 수단 뿐만 아니라 외교, 문화, 공공정책과 같은 방법이 동원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반미감정이 더 악화됐다. 부시 행정부의 하드 파워의 폐단을 절감한 오바마 대통령은 소프트 파워를 강조하면서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적절히 혼용한 스마트 파워 외교정책을 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해 말 “21세기 외교관은 시골 부족 원로도 만나고 줄무늬 정장 외에 멜빵바지도 입어야 한다”며 감성 외교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공 외교정책이 구체적으로 뭔가.
-21세기 신(新)공공정책의 골자는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대 민간 사이의 외교정책을 중시하는 것이다. 미국이 민간단체 동원해 아랍권에 자원봉사를 보내거나 아랍권 학생들을 상대로 한 장학금 프로그램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국제관계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부시 대통령의 집권 기간 6년 정도는 전세계가 테러 대 반테러 세력이라는 양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50년간 이어져온 냉전과 달리 테러와의 전쟁은 6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이념 대 이념,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9.11 테러가 국제정치의 판을 뒤흔드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지만 1, 2차 세계대전이나 냉전과 같이 국제 사회에서 ‘편을 가를 수 있는’ 엄청난 변수는 아니었다. 이제 국제 관계는 테러와의 전쟁 보다 글로벌 경제공조, G2, 핵 확산 방지 등 더 중요한 이슈가 부상했다.
▷미국의 패권에 변화를 줬나.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을 감행했던 2003년은 미국의 패권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하지만 이후 부시 행정부가 군사력의 전횡을 보임으로써 미국의 가치와 제도의 매력은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됐다. 미국의 패권에 엄청난 타격을 준 것이다. 반면 중국은 급부상했다. 매년 군사력도 두자릿수로 증강하면서 국제 질서가 G2 혹은 1극-다강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지난 5월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됐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은 미국 대테러와의 전쟁을 일단락 짓는 사건이었다. 이후 2인자도 사살됐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알카에다 세력도 급격히 약화됐다. 다른 테러조직 많지만 알카에다 만큼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하고 조직화한 테러조직은 없다. 빈 라덴이 사살되면서 군사적인 측면에서 테러조직을 약화시키려는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테러와의 전쟁 방향은?
-미국 경제에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군인을 파병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테러분자의 소탕이나 점조직을 와해시키려는 군사작전은 CIA나 네이빌실 등의 특수작전을 통해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를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공화당이 반발하는 국방비 삭감, 민주당이 거부하는 건강보험을 삭감이 필수적이다. 그중 가장 빨리 손댈수 있는 부분이 국방비다. 그만큼 테러와의 전쟁도 국내 상황에 따라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테러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근절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 문화적 외교적 접근을 통해 테러의 가능성을 낮추는 목표를 취할 것이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