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깊어지면서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3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12월 인도분 금은 전날 종가보다 21.80달러(1.3%) 급등한 온스당 1666.30달러에 거래를 마치면서 8거래일 동안 다섯 번째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안전자산 대표격인 금은 올들어 15% 급등하며 11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값은 앞으로도 더 올라 내년 초에는 온스당2000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금값이 백금값을 웃도는 역전현상도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금값이 오르는 이유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경기둔화 우려로 안전자산인 금을 사려는 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세계금위원회(WGC) 일본 대표 토시마 이츠오를 인용해 금값이 오르는 7대 요인을 분석하면서 “주가는 경기 낙관론, 채권은 비관론으로 성장하지만, 금은 신흥국 낙관론과 선진국 비관론으로 성장한다”고 꼬집었다.
▶신흥국 금 보유 확대=금값 상승의 주된 요인은 신흥국의 금 보유 확대 움직임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브릭스 국가들은 물론 한국, 태국, 멕시코 중앙은행까지 금 매입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달러나 유로화에 치중했던 보유 외환을 다변화하기 위해 금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20년간 대규모 금 매도기관이었던 중앙은행들은 올들어 금 매입 큰 손으로 입장을 바꿨다. 신문은 1990년대 유럽 중앙은행들이 연간 500t 이상의 대량의 금을 팔아치워 금값이 1999년 온스당 250달러까지 떨어졌지만, 올해는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나서 200t 이상을 사들였다며 이같은 움직임이 금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국 통화 불안감=달러, 유로, 엔화 등 주요국 통화가치에 대한 불안감은 금 쏠림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신문은 “달러가치 하락만으로 금값이 오르는 단순한 공식은 통하지 않는다”면서 “공공부채 급증으로 적자에 시달리는 주요국 통화 불안감이 달러는 물론 유로, 엔화까지 3중으로 가세해 ‘무국적 통화’ 금 선호현상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문은 현재 진행중인 엔고 현상은 일본경제의 펀더멘털 안정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국채 리스크 고조=2008년 리먼쇼크 이후 글로벌 자금은 주식에서 금으로 이동했지만, 올해는 유동성은 ‘국채에서 금’으로 흐르고 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미국, 유럽, 일본의 국채 위험성이 고조됨에 따라 ‘국가재정 리스크 제로’인 금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유동성으로의 도피 자금이 미 국채로 향하는 반면, 질적 안정성을 꾀하는 자금은 금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플레의 그림자=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이 급속한 인플레에 시달리면서 이들 국가는 긴축재정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해도 물가상승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 종이화폐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 가치 저장수단으로 탁월한 금이 인플레 헤지의 대표격으로 각광받고 있다.
▶신흥국 金소비 세계 최대=신흥국 국민들의 금 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2대 신흥국만 해도 전세계 연간 금 생산량의 60%를 흡수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금 선호도가 높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 짐에 따라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면서 금 쥬얼리 구입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올해 1분기 금 소비량이 90.9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배 가까이 늘면서 소비량 증가 속도에서 인도를 추월했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2년 전 인민은행에서 민간은행으로 금 통제를 해제했다. 희소 자원으로서의 금을 민간차원에서 많이 보유하게 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유사시 대비 ‘실탄’=더블딥 공포가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 유사시에 대비한 금 수요도 늘고 있다. 신문은 “미국의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로 보복테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금 사재기가 나타나는 시대는 지났다”며 미국과 유럽의 채무위기와 리먼쇼크와 같은 경제위기에 대비한 리스크 회피 수단으로 금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전했다.
▶금 생산량 급감=이처럼 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반면 전세계 금 생산량은 줄고 있는 점도 금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제 금값은 지난 10년간 6배 올랐지만 연간 금 생산량은 2400t에서 2700t 증가하는 데 그쳤다. 채산성이 확보되는 광맥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고 신규 광산개발도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금 생산은 ‘리사이클(재활용)’이라는 2차 공급원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