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미국과 파키스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파키스탄은 미국이 사전 통보없이 파키스탄 영토 내로 진입해 독단적으로 빈 라덴 은신처를 급습한 데 대해 주권침해 행위라며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파키스탄이 빈 라덴과 협력했을 가능성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양국 정상이 각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면서 미국과 파키스탄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조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일 파키스탄 내 빈 라덴 협력조직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조사를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CBS ‘60분’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 내에 빈 라덴을 도와주는 조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파키스탄 정부 인사의 개입여부는 알지 못하지만, 이는 우리가 조사를 해야 될 사안이며 더욱 중요하게는 파키스탄 정부가 조사를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파키스탄 내 빈 라덴 배후세력 가능성을 직접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방송사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 빈 라덴의 파키스탄 은신 사실에 많은 의문이 있다며 거들었다. 그는 NBC의 ‘밋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해 “파키스탄 정계나 군, 정보기관의 어느 고위 관리도 빈 라덴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도 빈 라덴이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불과 56㎞ 떨어진 아보타바드에서 수년 동안 거처했던 데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이 문제는 파키스탄과 공동으로 조사를 벌여야 한다”며 “이 조사를 위해 파키스탄을 압박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도닐런은 또 CNN의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State of the Union)’ 프로를 통해서는 “파키스탄은 빈 라덴의 3명의 부인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허용하는 한편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얻은 정보들을 미국에 제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파키스탄 측은 이들 부인과 관련된 자료들은 거의 미국 측에 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빈 라덴의 부인이나 자녀 등 가족들이 9.11테러 이후 빈 라덴의 일상생활은 물론 그동안의 행적이나 알카에다 활동 등과 관련해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 후사인 하카니 미국주재 파키스탄 대사는 미국 방송들과의 인터뷰에서 “조사가 완료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과의 적극 공조 및 정보공유를 약속했다.
그러나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가 빈 라덴 사살 이후 처음으로 9일 의회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격적인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양국 관계가 악화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위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길라니 총리는 이날 특히 빈 라덴 제거를 위해 미국이 파키스탄 영공을 침범한 데 강한 불만을 제기할 예정이다. 길라니 총리는 “추가적인 침범이 일어난다면 적절한 행동을 취할 것이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파키스탄) 영공을 방어할 것이다”라는 발언을 내놓을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윤희진 기자/jjin@heraldcorp.com